

여름을 달군 가방들 - 맨 몸으로 여름을 견디다
에어컨 바람 한 점 없는 거실, 훅훅 끼치는 무더위 속에서도 코바늘을 놓지 않았다. 2024년의 여름은 유독 뜨거웠지만, 내 손끝에서 피어나는 가방들은 그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다 못해 바닥으로 뚝 떨어질 법한 날씨였음에도 기어이 선풍기 바람 하나에 의지한 채 실 뭉치와 씨름했다. 덥다는 감각조차 가방의 배색을 고민하고 코를 산정하는 몰입감에 밀려났다.
에어컨 바람 보다는 맨 몸으로 여름을 견디고 싶었다. 잠시 부는 바람에 좋아하면서 그렇게 견디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새로운 도안을 찾고, 내 안의 감각이 이끄는 대로 형형색색의 컬러들을 조합했다. 실의 질감과 색채가 맞물려 하나의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치유였다. 어떤 날은 파란색 실로 시원한 바다를 상상하며 떴고, 어떤 날은 해 질 녘의 노을처럼 붉고 화려한 실들을 엮었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아붓다 보니 가방은 어느새 하나둘씩 늘어났다.
완성된 가방 중에는 미처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들도 꽤 된다. 솜씨 좋게 만들어진 녀석들을 보고 기뻐할 지인들의 얼굴이 먼저 떠올라, 완성하자마자 선물로 건네주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가방들이 지금쯤 누군가의 곁에서 여름의 조각을 간직하고 있겠지만, 내 기록장에 남지 못한 그 실루엣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비어 있는 사진첩의 칸조차도 누군가에게 전해진 따뜻한 마음의 증거라 위안 삼는다. 그 뜨거웠던 여름, 나는 단순히 실을 엮은 것이 아니라 열정과 진심을 촘촘히 엮어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 침묵의 뜨개질
침묵의 시간은 뜨거운 여름의 열기보다 더 무겁게 방 안을 채웠다. 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받아 들고 온 날부터, 세상의 소음은 먼발치로 물러났다. 직장에 사직서를 던지고 돌아온 집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익숙한 실 뭉치를 잡는 것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멈춰버린 일상 위로 막막함이 내려앉았지만, 바늘을 움직이는 손끝만큼은 정직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창밖은 다른 세상 같았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가벼운 수다를 떨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고, 사실은 문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 자체가 두려운 일이었다. 내 몸 안에 자리 잡은 병마와 마주하며, 나는 스스로를 집이라는 작은 요새 안에 가두었다. 에어컨 바람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그 여름, 나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묵묵히 코를 잡고 단을 올렸다. 비좁은 침묵 속에서 실과 바늘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입원 날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으면서도, 차라리 빨리 지나가 버리길 바라는 모순된 기다림이었다.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그날을 향해 가며, 나는 매일의 불안을 뜨개 코 사이에 촘촘히 밀어 넣었다. 화려한 색감의 실들을 고르며 내일의 생기를 꿈꿨고, 한 줄씩 완성될 때마다 죽어가는 시간이 아닌 살아있는 결과물을 확인했다. 그 지독했던 여름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나는 기다림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회복 기간 - 생각을 비우기 위한 명상
병원 천장의 하얀 적막은 집보다 더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오만가지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와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질병에 대한 공포,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멈춰버린 내 삶에 대한 비관이 독버섯처럼 피어오를 때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바늘을 쥐었다. 환자복 소매 아래로 움직이는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나를 지키는 길이었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서 명상하듯이 뜨개질을 한 것 같다.
퇴원 후 돌아온 집에서도 나의 일상은 여전히 뜨개질로 채워졌다. 몸은 비록 예전 같지 않았지만, 내 손끝에서 한 단씩 올라가는 편물을 보고 있으면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소일거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그 작은 움직임이 사실은 나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었음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만약 내게 이 실 뭉치와 바늘조차 없었더라면, 그 암담하고 긴 시간들을 도대체 무엇으로 견뎌낼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침묵 속에 묻혀 보낸 그 계절, 나는 단순히 가방이나 소품을 뜬 것이 아니었다. 흐트러진 마음의 결을 정돈하고, 깨진 일상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 붙이며 나 자신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와 병마의 위협 속에서도 묵묵히 이어온 그 한 코 한 코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가장 아름다운 기록으로 바꾸어준 나의 생존 방식이자 구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