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벼운 여름 이불 - 냉방병과 더위 사이의 균형
여름의 공기는 점착력이 강하다.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이 짐처럼 느껴지는 계절, 결국 회귀하게 되는 곳은 가장 원초적인 가벼움이다. 올해 여름의 기억을 한 단어로 압축하자면 역시 ‘흰색’이다. 시각적 온도라도 낮춰보겠다는 필사적인 의지가 담긴 그 무채색의 순수함 말이다.
햇볕이 따가운 정오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메쉬 소재나 아일릿 면직물이 유일한 구원 투수였다. 바람이 원단 사이를 통과하며 피부를 스칠 때, 아주 찰나지만 도시의 열기가 휘발되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구멍 사이로 드나드는 그 미세한 공기의 흐름이 여름의 고통을 '살짝' 잊게 해준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름의 진정한 아이러니는 실내에서 발생한다. 밖은 용광로인데 실내는 북극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쏟아지는 에어컨의 냉기는 처음엔 환희지만, 시간이 흐르면 뼈마디를 시리게 하는 불청객으로 변한다. 이때 나를 지켜준 건 얇은 덮개 같은 여름 이불이었다.
살랑거리는 거즈 면이나 인견으로 된 그 가벼운 이불을 무릎 위에 덮을 때의 안도감을 기억한다. 차가운 기계 바람으로부터 다리를 보호하면서도 몸의 열기는 가두지 않는 그 적당한 거리감. 덮고 있지만 덮지 않은 듯한 그 기묘한 무게가 냉방병과 더위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주었다.
결국 나의 여름은 거창한 휴양지가 아니라, 흰색의 가벼움과 바람이 통하는 구멍, 그리고 차가운 에어컨 바람 아래서 나를 지켜주던 얇은 이불 한 장으로 기록된다. 가장 뜨거운 계절을 가장 서늘하게 버텨낸, 작지만 확실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흰색을 좋아하는 친구 - 무채색을 사랑하는 그녀
"여름에는 뭐니 뭐니 해도 흰색이지."
"겨울 조끼를 뜰때는 무조건 검정색이야"
망설임 없는 그 단호한 취향 앞에서 나는 그저 웃음이 난다. 유난히 뜨거울 올여름을 예견이라도 한 듯, 그녀는 구멍이 숭숭 뚫려 바람이 잘 통하는 하얀 여름 이불을 주문했다. 겨울 이불은 이미 있으니 이제 시원한 덮개가 필요하다며 툭 던지는 그 말. 누군가에게는 무리한 부탁처럼 들릴지 모르나, 내게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신호탄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사이. 굳이 격식을 차리거나 상대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이 막역함이 우리 사이에 흐르는 세월의 깊이를 증명한다. 서운함보다 고마움이 앞서는 이유는, 그녀의 당당한 요구가 곧 나를 향한 전적인 신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것을 기꺼이 덮고 자겠다는 그 마음이, 정성껏 뜨개질을 하는 나의 수고를 단숨에 '보람'이라는 근사한 단어로 바꿔놓는다.
에어컨의 차가운 냉기로부터 다리를 포근하게 감싸줄 얇은 덮개. 그 용도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얀 실 뭉치를 준비한다. 바늘 끝에서 피어날 하얀 무늬들은 바람의 통로가 되고, 누군가의 여름을 지켜줄 안식처가 될 것이다.
실을 고르고 코를 잡는 손길에 신명이 난다. 단순히 이불 한 장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견고한 우정을 한 코 한 코 엮어가는 시간. 올여름, 그녀의 무릎 위에서 찰랑거릴 하얀 이불은 가장 시원하면서도 가장 뜨거운 우리의 마음을 닮아 있을 것 같다.
여름을 기다린다 - 어서 봄이오고, 여름이 오기를 고대한다.
유난히도 길고 가혹한 겨울이었다. 지독한 감기를 두 번이나 정면으로 맞서고도, 봄을 시샘하는 잔기침은 여전히 목끝에 걸려 떠날 줄을 모른다. 날씨가 차갑게 식고 하늘이 잿빛으로 흐려지는 날이면, 그 스산함이 고스란히 내 안으로 스며들어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회복을 위해 손을 쉬지 않았다. 마음의 온기를 지피려 커다란 담요를 두 개나 뜨고, 가방 두 개를 연달아 완성해 보았지만, 몸과 마음은 쉽사리 예전의 활력을 되찾지 못했다. 뜨개질의 몰입마저도 겨울의 무게를 덜어내기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그때,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여름 이불을 떠달라는 그 명랑한 주문.
그 순간, 내 귀에는 그 말이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얼어붙은 시간을 깨뜨리는 치유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누군가를 위해 밝고 환한 실을 고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구멍 숭숭 뚫린 조직을 고민하는 일. 그것은 나를 가두고 있던 겨울의 외투를 벗어던지는 예식과도 같았다. 친구의 그 투명한 고집이, 정체되어 있던 나의 계절을 억지로라도 끌어당겨 주는 듯해 내심 반갑고 고마웠다.
이제는 간절히 여름을 기다린다. 두터운 털실의 묵직함 대신 하얀 실의 가벼움을 손끝에 느끼며, 옷차림만큼이나 가벼워질 마음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에어컨 바람 아래서 친구에게 손길처럼 덮어줄 그 얇은 덮개가 완성될 즈음이면, 내 안의 해묵은 기침도, 눅눅했던 우울도 뜨거운 햇볕 아래 하얗게 증발해 버리길 바란다. 환한 여름, 그 빛나는 계절 속으로 한 코 한 코 나아가는 지금이 벌써 서늘하게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