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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타의 아름다운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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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르지 않은 컬러. 복고풍 느낌. 주저하는 선물

by 살찐 소나기 2026. 3. 11.

내가 만든 무릎담요

 

내가 고르지 않은 컬러 -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의 설렘은 언제나 색을 고르는 손끝에서부터 시작된다.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의 조합을 그려보며, 가장 조화롭고 빛날 것 같은 색들을 신중하게 골라 모았다. 이번만큼은 그 어떤 작품보다 화사하고 이색적인 미감을 완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뜨개질이 진행될수록 예상치 못한 불협화음이 발목을 잡았다.

분명 육안으로는 완벽해 보였던 실들이건만, 편물이 올라갈수록 미세한 굵기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굵기가 다른 실들이 섞이자 편물의 조직은 고르게 펴지지 못하고 한쪽이 울거나 쭈글쭈글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손끝에 전해지는 리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장 원했던 컬러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굵기가 비슷한 실들을 찾다 보니, 평소의 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생소한 컬러들이 바늘 끝에 걸려 올라왔다. 특히나 가장 기대를 품었던 핵심 컬러는 다른 실들과의 굵기 차이와 어색한 매치 때문에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바구니 구석으로 밀려났다.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편물을 보며 아쉬움이 남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뜨개의 묘미이자 인생의 단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계획한 완벽한 색의 잔치는 아니었지만, 낯선 색들이 섞이며 만들어내는 의외의 질감이 새로운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때로는 고집하던 취향을 내려놓고 환경에 맞춰 실을 꿰어가는 과정 자체가, 비록 처음 계획과는 다를지라도 그 나름의 견고한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복고풍 느낌 - 시골집 할머니 느낌

 

처음 고집했던 화사한 색채들이 실의 굵기라는 현실적인 제약 앞에 무너졌을 때, 내심 아쉬움이 컸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평소라면 절대 손에 쥐지 않았을 투박한 컬러들이 바늘 끝을 타고 올라올 때만 해도 이 작업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단 한 단 편물이 쌓이고 마침내 완성된 담요를 펼쳤을 때, 그곳에는 내가 계획한 세련미 대신 전혀 다른 온기가 머물고 있었다.

완성된 담요에서는 짙은 '복고'의 향기가 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세련된 레트로라기보다, 훨씬 더 깊고 아련한 시간이 밴 풍경이다. 삐뚤빼뚤한 실의 굵기와 예기치 못한 색들의 충돌이 오히려 익숙한 편안함을 만들어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시골 할머니의 뒷모습이 겹쳐졌다. 아랫목에 앉아 손자들을 위해 묵묵히 뜨개질을 하시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 포근한 느낌 말이다. 아랫목에 앉아서 TV를 보는 할머니 무릎위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완벽한 조화만을 쫓았다면 이토록 다정한 질감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했던 색을 써보지도 못한 아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할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투박한 위로가 채워졌다. 계획에서 벗어난 우연이 선사한 이 색의 조합이, 이제는 꽤 근사한 인연처럼 느껴진다. 정석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결국은 나름의 멋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뜨개가 내게 가르쳐준 인생의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주저하는 선물 - 세월과 인연

한 단 한 단 정성을 들였음에도, 완성된 담요를 보며 선뜻 누군가에게 내어주지 못하고 망설이는 마음이 남는다. 내가 처음에 그렸던 화려한 색채의 잔치는 아니었지만, 실의 굵기를 맞추며 타협해 나간 그 과정 끝에 남은 것은 투박하고 구수한 '시골 할머니'의 정서였다. 세련된 요즘의 감각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조금은 고집스럽고 단단한 세월의 결이 그 안에 고스란히 박혀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유행 지난 복고풍의 작업물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 담요가 지닌 묵직한 무게감과 예기치 못한 색들의 조합이 주는 안도감을 알아봐 줄 이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그것은 아마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느껴지는 삶의 여유를 아는 사람, 혹은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아는 깊은 눈을 가진 주인일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단단해진 이 편물처럼, 삶 또한 의도치 않은 방향에서 뜻밖의 인연을 맺어주곤 한다. 억지로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 담요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이 투박한 위로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 인연에게 나의 세월을 건넬 수 있으리라. 비록 지금은 내 곁에 머물며 옛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이 담요는 이미 자신만의 주인을 기다리며 고요하고 단단하게 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