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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야기27, 합창과 솔로, 나의 아하!!

살찐 소나기 2026. 4. 10. 08:15

기숙사에서 노래를 열심히 즐겁게 불러본다.

 

꿈이야기27 - 2023. 11. 26 내가 학생이면 기숙사에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일하는 사람들과 점심먹으러 간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갔는지 사람이 별로 없다.
같이 차를 타고 오는 동료에게 이것 저것 물어본다. 오는 길이 험난하다 
공사중이라 길을 파헤친 곳도 있고 이곳저곳을 막아서 갈지차 처럼 길을 간다.
어딘가에서 직장 동료를 만나 차에서 내리고 혼자 걸어가는데 단체 관광객을 태우는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버스를 타는데 모든 사람이 합창을 하는 것 같다.
거기에 서 있던 어떤 사람이 혼자서 화음을 넣는 척하면서 혼자서 고음을 올리는데 들어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다 생각했더니 그 사람은 언제나 그렇게 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어떤 건물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내가 학생이면 기숙사에 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언어도 늘 것이고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그 방에 들어와서 기도인지 중얼거림인지 큰 소리로 하는데 한국말로 해서 어디 한국학생인가 한다.
층계로 내려오는데 노숙하는 어린 아이들 같은 아이들이 층계마다 두꺼운 패딩 잠바를 아무렇게나 놓고 누워있는데 그 길을 피해서 내려온다.

 

 

 

합창과 솔로 - 기숙사와 노숙하는 아이

합창은 여러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형태이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집단적 가치'나 '인류 공통의 지혜'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꿈에서 합창 소리를 듣는 것은 나 개인이 아닌,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온 보편적인 원형(Archetype)의 에너지가 활동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현재 내가 속한 공동체나 사회적 규범에 잘 통합되어 있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개성이 집단 속에 묻혀버린 상태를 경고할 때도 나타난다. 융은 꿈속의 커다란 합창 소리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리"가 내면에서 선포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단 한 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솔로는 철저히 '개별성'과 관련이 깊다. 수많은 내면의 소리 중 단 하나의 선명한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자아가 무의식의 핵심 메시지에 집중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자기(Self)'가 자아(Ego)에게 보내는 직접적인 신호일 수 있다. 집단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하는 시기에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그 노래가 아름답다면 영혼의 충만함을, 슬프다면 억눌린 감정의 분출을 뜻하기도 한다. 만약 이성(異性)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이는 내면의 인격인 '아니무스'가 자아에게 말을 걸어오는 상징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숙사는 개인의 사적인 공간이라기보다 여러 사람이 규칙을 공유하며 머무는 공동의 공간이다. 기숙사는 사회적 역할이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머무는 장소이다. 꿈에 기숙사가 나타났다면, 현재 나의 심리 상태가 개인적인 욕구보다는 '사회적 기준이나 집단의 기대(페르소나)'에 맞춰져 있음을 의미한다.또한 기숙사는 영구적인 정착지가 아닌 잠시 머무는 곳이다. 이는 자아가 현재 심리적으로 어느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훈련이나 준비 과정에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내밀한 욕구가 집단의 규칙에 의해 억압되거나 노출되어 있다는 불안감을 반영할 수 있다.

아이는 융의 원형 이론에서 '신성한 아동(Divine Child)' 혹은 '잠재력'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아이가 집이 없이 떠돈다는 것(노숙)은 매우 절박한 신호이다. 아이는 앞으로 성장할 새로운 생명력과 창조성을 의미한다. 그 아이가 노숙하고 있다는 것은, 나의 내면에 아직 발현되지 못한 소중한 재능이나 감정적 욕구가 장(기숙사라는 체제)로부터 외면당하고 방치되어 있음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과거의 상처나 억압된 기억이 치유되지 못한 채 내면의 변두리를 떠돌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나는 자아의 따뜻한 관심과 '집(심리적 안식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숙사(사회적 적응)에 머무는 자아와 밖에서 노숙하는 아이(소외된 본질)의 대비는, 이제는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버려진 내면의 목소리를 통합해야 한다는 개성화 과정의 강력한 요구로 보는 것이 어떤가 한다.

 

 

나의 아하!! - 갈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집단에 무조건 순응하면서 안정을 찾을 것인지, 나의 독자적인 길을 가면서 나를 찾을 것인지 경계에 서서 서성이는 것 같다.

기숙사에 들어가면 압박이 있겠지, 규율과 규칙과 규범이 사회적 통념들 말이다. 하지만 노숙을 하더라도 나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면 나는 내면의 자유를 얻을 수 있겠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먹고 살아가는 가장 본능적인 것을 신경쓰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합창과 솔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집단에서의 안정감과 솔로의 위험부담과 집단무의식 속에서 살았던 나는 이런 것을 선택하기에 너무 힘든 것 같다.

둘 다 마음이 가고, 둘 다 두렵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은 나의 독자노선을 가라고 하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융을 공부하고, 내면의 나를 바라본다면 당연히 노숙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가야하지만 때때로 버겁고, 힘들때, 그리고 어떤 벽같은 것을 만날 때는 노숙하는 마음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가야하는 길인 것을 안다. 종국에는 그것이 나에게 평안을 줄테니 말이다.

외국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결국은 소통의 문제인데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워야 할 것이다. 집단 속에서 말하는 방법이 아닌 나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그리고 들어줄 수도 있는 귀를 가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