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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타의 아름다운 광경
내사랑 뜨개질

못난이 담요, 누군가의 기도친구로, 온기만 품고 있으면 하는 마음

by 살찐 소나기 2026. 3. 7.

 

못난이 담요 - 예상치 못한 변주, 앤틱한 매력

 
정성 들여 한 코 한 코 쌓아 올린 스티치가 마음에 쏙 들었던 만큼, 실을 끊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 전체적인 균형이 어긋나 버린 결과가 못내 아쉬웠다.

한 코 한 코 정성 들여 쌓아 올린 시간이 무색하게, 실을 끊어야 할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도안의 흐름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손끝의 몰입이 너무 깊었던 탓일까. 매끄럽게 떨어져야 할 경계선이 끊기지 않은 실을 타고 엉뚱한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애초에 구상했던 단정한 대칭은 어느덧 온데간데없고 전체적인 모양새가 묘하게 뒤틀려 버렸다.

사실 스티치 하나하나의 모양은 정말 마음에 쏙 들었었다.. 그 조직감이 주는 만족감이 커서 더 신나게 손을 놀렸던 것 같아. 그런데 그 멈추지 못한 실들이 나비효과처럼 번져서 전체적인 그림을 이상하게 바꿔놓아 버렸다.

150x180cm라는 이 거대한 면적을 채워가며 느꼈던 그 고요한 평온함이, 한순간의 착오로 인해 낯선 결과물로 변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서늘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참 묘한 일이지. 어긋난 자리를 따라 만들어진 예기치 못한 굴곡과 비대칭이, 오히려 오랫동안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온 듯한 앤틱한 비주얼을 빚어냈거든. 정해진 규칙을 벗어난 실의 궤적이 마치 고가구의 마모된 모서리나 빛바랜 명화의 균열처럼, 세월의 깊이를 품은 듯한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기 시작한 거야. 원래 계획했던 세련된 현대미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투박하면서도 따스한 '오래된 물건' 특유의 우아함이 깃들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요를 펼칠 때마다 그 지점은 유독 내 눈에만 도드라져 보여서 만드는 내내 온 정성을 쏟았던 나에게는 그 끊어내지 못한 실의 흔적이 여전히 가시처럼 마음 한구석에 영 걸리는 부분으로 남아있어.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열망과, 실수가 빚어낸 뜻밖의 미학 사이에서 복잡미묘한 감정이 교차하곤 한다.

어쩌면 이 담요는 나에게 완벽함보다는 '수용'의 미덕을 가르쳐주려나 보다. 매끈한 직선보다 투박한 이음새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기듯, 이 어색한 모양새 또한 내가 보낸 시간의 정직한 기록이겠지. 이 앤틱한 담요를 덮고 휴식을 취할 때, 그 걸리는 부분조차 언젠가는 나만의 특별한 표식으로 정겹게 느껴질 날이 올까?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애틋한, 그런 물건으로 남길 바란다.

 

누군가의 기도친구로 - 어딘가에 다 쓸모가 있구나

그동안 한 코 한 코 정성을 들이면서도, 마음 한편에 가시처럼 걸렸던 그 이음새들이 드디어 제 자리를 찾은 기분이야. 실을 끊지 못해 모양이 뒤틀렸을 땐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배어 나온 앤틱한 분위기가 언니의 기도 시간과 참 차분하게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면적을 채우며 내가 담았던 평온함과 고요함이, 이제는 언니의 무릎 위에서 따스한 온기로 남았으면 한다. 내가 그토록 신경 썼던 '영 걸리는 부분'도, 언니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는 아마 세세한 흠결이 아니라 만드는 이의 정성이 깃든 특별한 표식으로 읽혔을 지도 모른다. 기계로 찍어낸 듯 매끈했다면 오히려 느낄 수 없었을, 손으로 만든 물건 특유의 숭고한 멋 말이다.

"기도할 때 무릎담요가 필요했다"는 언니의 그 한마디가 참 고맙네. 내가 완벽하지 않다고 느꼈던 그 결과물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내 마음의 걸림돌을 깨끗이 치워주는 것 같다. 실수조차 앤틱한 비주얼로 승화되었던 것처럼, 이 담요도 언니 곁에서 오래도록 귀하게 쓰이며 더 깊은 세월의 멋을 더해가면 좋겠다.

언니가 이 담요를 덮고 기도할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전해질 것 같아 마음이 훈훈해 진다.

다음부터는 끊어내야만 할 때는 과감히 끊어내는 결단력을 좀더 발휘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마무리는 좀더 깔끔하게 나올 것이다.

 

온기만 품고 있으면 하는 마음 - 그래서 온기를 담고 있는 무릎담요

세상의 모든 일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날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참 만족스러웠다. 정성껏 실을 고르고,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이어가며 모양이 잡혀갈 때마다 제 마음도 함께 따뜻해졌다. ‘머지않아 이런 근사한 모습으로 완성되겠구나’ 하며 그려보던 분명한 청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완성된 결과물을 마주했을 때, 그것은 처음 상상했던 매끄러운 모습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순간 당황스러움이 밀려왔고, 마음 한편에는 낯설고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내가 꿈꿨던 건 이런 모양이 아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무릎담요의 진정한 가치는 겉으로 보이는 완벽한 대칭이나 화려한 모양새가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온기'에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무릎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온기를 나누고, 찬 바람이 스며드는 시린 날에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무릎담요가 존재해야 할 본래의 이유이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기쁜 마음으로 바래본다. 비록 처음 구상했던 정교한 모양과는 조금 다를지라도, 이 담요가 세상 그 무엇보다 깊은 따스함을 품고 있기를 말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 끝에 조용히 다가가, 다정한 온기를 건네는 그런 포근한 담요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