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야기22 - 2023. 7. 17. 차를 타고 간다.
외국에서 하는 어떤 모임을 남편과 간것 같다. 남편은 자기 모임을 위해 가고 나는 따로 관광을 즐기고 있다. 약국같은 곳을 들어간 것 같은데 그 약국에 흰강아지가 있었는데 군데군데 염색을 했다. 나중에 짐작하건데 친구의 남편인듯 했다. 강아지와 하루종일 잘 지내고 있는 약사인 듯하다.
바깥에 택배(?)가 와서 가지러 갔더니 부침개, 김치등 음식들이 있다. 그 음식들을 가지고 들어와서 약국을 지나갔더니 친구 와 친구 엄마가 있었다. 친구 엄마가 그 음식을 열심히 받아서 그릇에 담아 놓는다. 바깥에 나가보니 다 들어오지 못한 음식이 있어서 들고 들어온다 바닥에 떨어진것도 있는데 친구 남편이 주어서 나를 준다. 바닥에 떨어져서 약간 찝찝하기는 한데 줏어서 주니 받아가지고 왔다.
나는 남편과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남편은 올 생각도 안한다. 전화를 하려는데 내가 전화가 없는지 전화번호를 모르는지 하지 못하는데 마침 전화가 왔다. 모임에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려 하니 나 혼자 가라고 한다. 이런 나는 운전을 못하는데 그런데 옷장에서 열쇠꾸러미 두개를 찾았다. 차를 타고 간다 내가 운전하는데 브레이크인지 엑셀인지 생각하다가 다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어서 다행이다 했다.
조금 있다가 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간다. 직장동료가 뒤에 앉아서 차 문을 열고 간다. 위험하다고 하니까 시원하니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문을 닫고 간다.
동물적 본능 - 강아지와 고양이
익숙한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남편과 따로 움직이는 설정은 나의 의식이 일상적인 자아(Ego)의 영역을 벗어나 무의식의 새로운 영토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강아지는 충직함과 본능을 상징하지만, '염색'이 되었다는 건 본능적인 에너지가 인위적인 손길(사회적 기대나 페르소나)을 입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강아지가 나중에 '친구의 남편'이자 '약사'로 짐작되는 대목은 융의 심리학에서 약사는 '치유자'의 원형이다. 내면의 본능적 에너지가 이제는 단순한 동물의 수준을 넘어, 무언가를 치유하고 조제하는 인격적 존재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다.
택배로 온 부침개와 김치는 한국적인 정서, 즉 정신적 자양분이며, 영적인 에너지이다. 친구와 친구 어머니가 이를 정성스럽게 담는 행위는 내면의 '모성 원형'이 외부에서 온 에너지를 잘 소화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친구 남편이 주워 주는 장면이 핵심이야. 바닥에 떨어졌다는 건 '더러워짐' 혹은 '그림자'적인 요소를 포함하지만, 이를 주워 받는 행위는 부족하고 오염된 부분조차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무의식의 메세지인 것일 것이다.
남편은 자기 모임에 집중하며 나에게 "혼자 가라"고 한다.내면의 '여성성'이 이제는 나에게 심리적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운전을 못 한다고 생각했는데 옷장에서 '열쇠 두 개'를 찾았다는 건, 내 안에 이미 문제를 해결할 결정적인 도구(지혜와 능력)가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브레이크와 엑셀 사이에서 갈등하다 브레이크를 밟아 사람들을 보호한 것은, 자아가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도 균형과 도덕적 판단력을 잃지 않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일 것이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이 아니라, 나의 인생의 핸들을 직접 잡기 시작한 단계에 와 있는 듯 하다.
마지막에 동료가 차 문을 열고 가는 장면은 위험해 보이지만, 동료는 '시원하다'고 말한다. 이는 내가 구축한 견고한 자아의 틀(차 문)을 조금은 개방해도 괜찮다는 무의식의 제안일 수 있다. 나는 안전을 위해 문을 닫았지만, 이 장면은 내가 앞으로 '무의식의 신선한 공기(새로운 자극)'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경계 설정을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나의 아하!! - 강아지와 음식
강아지는 나의 꿈에 자주 나오는 동물적인 본능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강아지가 가지고 있는 본능은 사랑, 충직, 연민, 든든함, 일편단심 등등 셀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있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누구에게 사용하는지는 순전히 의식의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본능들을 꺼내어 쓸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 무의식이 나에게 "좀 깨어나봐 이제는 쓸 수 있으니 마음껏 사용을 해봐도 좋을 거야"라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불결해 보여도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받아온 것처럼, 내 안의 작고 사소한 모순들까지, 상처들까지, 그리고 그림자까지 모두해서 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하여야 좋은 에너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를 수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통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에 흠없는 사람이 어디있고, 상처입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내 모습이고, 그것도 나를 살찌우는 나의 양분인 것이다. 그런 그림자가 나에게 왜 왔어야 하는지, 그런 그림자를 어떻게 치유해야하는지 그것이 날마다 나에게 할 질문이고, 치유자로서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애썼다"라고 말해줄 내가 되어가는 것일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침개가 나오는 것을 보니 아마 나는 이런 모든 영적 에너지를 맛있게 먹고, 잘 사용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걸어본다.